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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조금은 환상적인 느낌이 들 때면
    Essays 2008. 4. 2. 21:30

    언젠가 조금은 환상적인 느낌이 들 때면
    눈을 감고 고개를 약간 들고 숨을 깊게 한 번 들이쉬면
    수면이 보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수면이
    어디선가 불어오는 빛과 함께 찰랑거린다.
    그 일렁임은 아주 부드럽고 어딘가 호흡과 닮아있다.
    숨을 쉬어도 물방울 같은 건 전혀 생기지 않는다.
    물 속인지 맥주 속인지 알 길도 없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정말 편안한 느낌이란 것,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할만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건, 음-, 엄마 뱃속 양수 안에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은 아니다.
    약간은 시원한 밤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고민 없이 생각 없이 잠이 아주 잘 올 듯한 기분과 함께
    푹신하고 넓은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쓴 채로
    팔과 다리를 편하게 쭉펴고 눈을 감으면
    그제야 전신을 타고 천천히 부드럽게 흐를 듯한 느낌, 이다.
    혹은, 추운 날 이제 막 뽑은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1분 정도 따뜻함을 느끼며 참은 뒤 마시는 첫모금의 커피향하고도 비슷한 감이 있고,
    비슷한 날, 쌀쌀함을 포근함으로 바꿔주는 햇살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며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살랑, 하고 딱 한 번 불어와 얼굴을 어루고 간 바람에
    가던 방향의 하늘을 올려다볼 수 밖에 없을 때의 느낌하고도 조금 비슷하다.

    그 수면이 비추는 색깔은 정말 오묘하다.
    레드와 그린이 주를 이루는 강한 원색들의 조화에 투명과 불투명이 동시에 보이는데,
    그건 마치 아무도 모르게 깊은 숲속에 살고 있는 요정들이 축제를 벌일 때 마시는
    그들의 영생을 지켜주는 고귀한 술에 맛을 더하기 위해
    아침 폭포에 떠오른 무지개를 녹여넣은 듯하다.

    2004.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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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한 달 반 정도 일했다.
    하루 2교대로 하는 힘든 일이어서 견디지 못하고 금방 그만 두었다.
    소위 '공부가 가장 쉬운 일'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오직 빨리 기름으로 얼룩진 몸을 씻고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뜨거운 물로 조금 긴 샤워를 하고 새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면
    수면이 보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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