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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전 10시 45분의 커피
    Essays 2008. 3. 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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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는 양치를 해서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나는 줄곧 10시 45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44분까지 씁쓸했던 치약맛의 입 안 감촉이 45분이 되자 깨끗이 사라졌다.
    언제 초승달이었냐는 듯, 어느 밤에 보면 보름달로 떠 있는 달처럼.
    오전 10시 45분이 되자 불현듯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꼭 이 시간에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느낌,

    그것은 운명이 타준 커피향이었다.

    그리고 난 그 향의 빨아들이는 듯한 매력을 절대적인 느낌으로 거부할 수 없었다.

    친절하고 얌전한 짝꿍에게 커피를 마실 건지 물어보고
    이내 바로 커피를 타기 위해 일어섰다.
    46분의 커피가 되서는 안 된다! 고, 아찔한 커피향이 날 몰고 있었다.

    난 공기층 사이에는 없는 4차원적인 향기의 선율을 따라
    프레스토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45분 14초에는 캐비넷에서 종이컵을 꺼내 준비하고
    22초에는 가늘고 기다란 포장에 들어있는 모카 골드 마일드의 한쪽을 뜯었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조심조심 물높이를 조절해 가며 받으니 31초가 되었다.
    스푼으로 열 서너 바퀴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건 '커피 타는 곡'의 클라이막스였다.
    이 (異)공간에 흐르던 곡의 마무리가 현실의 회오리를 타고 올라와 코의 감각을 건드리기까지
    10초 정도의 시간을 나는 무아지경의 피아노연주자처럼 눈을 감고 즐겼다.
    무언가, '하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완성된 듯한 느낌이 지나간 뒤는 50초였다.
    내가 45분의 커피를 45분에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바로 그 때였다.
    46분이 되기까지 10초 정도의 시간은 길었지만 커피향에 정신이 팔려
    내 코는 그 시간을 결코 길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45 분을 떠나면서 운명의 커피향은 내게 한 가지 약속을 제안했다.
    시 간이 지나고 47분이나 혹은 53분 쯤에 커피의 3분의 1이 남게 되면,
    가 라앉은 설탕을 일으키듯 컵을 몇 바퀴 흔들어서 맛에 취해 잊혀진 향기를
    컵 안쪽의 마른 커피자국보다는 조금 덜 슬프게, 추억해 달라는 것이었다.
    영 원히 돌아올 수 없는 1분과의 이별마당에 거절할 이유는 찾기도 싫었다.

    그것은 흔하디 흔한 멜로물의 뒤끝 같은 엔딩이었지만,

    은은하고 아주 편안했다.

    200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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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 고.
    기숙사 생활하던 때, 모닝 커피를 즐겨 마셨다.
    그래봐야 작은 커피믹스 한 박스를 룸메이트와 돈 모아 사서 타마시는 정도였지만,
    당시에는 아침 특유의 여유와 함께 꽤나 쏠쏠한 재미였다.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며칠 뒤 아침에
    커피를 타다가 문득 생각나서 순식간에 써버렸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 챌 수 있는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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