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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Essays 2008. 9. 1. 15:29
    <위대한 개츠비>를 두번째로 읽기를 마쳤던 그 날 오후
    밖에선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두어 시간 전부터 켜놓은 블룸버그 인터넷 라디오가 빗소리와 함께 방 안에 흘렀다.
    브라우저에 띄워놓은 다니엘 파우터의 Free loop의 가사가 멜로디를 연상시켜 주었다.

    5년 쯤 전 군대 가기 전 첫 번째로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전혀 와닿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당시 난 작가가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거의 이해하지 못 했다.
    문장 사이사이의 옥구슬 같은 표현들과 원본에서는 그 표현들이 어떤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 되었을 지도,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가 단순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
    라는 문장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도 모를 시기...
    실제로 난 <상실의 시대>를 읽은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하루키의 몇 가지 다른 작품들은 읽어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문학이나 교양의 최상봉인 듯 얘기하고,
    티비 광고에도 이른바 럭셔리한 사람이면 봐야할 듯 한 소설로 나오는 <상실의 시대>는
    내게 이미 굉장히 엄청난 것이었고,
    식사 때 아끼고 아껴서 마지막 젓가락질로 먹고 싶은 음식과 같은 것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 일본 현대 문학을 어느 정도 읽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아직도 <상실의 시대>를 읽지 않고 있는 이유는
    단지 <위대한 개츠비>를 아직 세 번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이유를 가지고 있기 전 <상실의 시대>를 읽지 않고 하루키의 다른 작품을 읽었던 건
    그 책 두께가 두껍고 상, 하 권까지 나뉘어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라는 사실은 또 얼마나 황당한지.

    하지만 결국 난 <위대한 개츠비>를 한 번 더 읽고 나서야 <상실의 시대>를 읽을 생각이다.
    하루키가 아닌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누군가는 <위대한 개츠비>가 어떠했다, 어떤 걸 느꼈다는 얘기는 왜 하나도 하지 않는지 불평할 수도 있겠다.
    그런 얘기를 여기서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책을 두 번 읽어보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 번 읽지 않으면 <상실의 시대>를 읽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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