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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06. 15
    Poetiary 2009. 4. 3. 00:22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없던 우리(삼남매)는
    '외'할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할머니였는데.

    상병 정기 휴가 첫날,
    새벽 3시 쯤 집에서 자다가 어머니께서 전화 받는 소리에 나도 깨었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시는 어머니, 나는 정신이 또렸해졌다.
    한밤중, 채비를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나는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죽으면 소식을 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약간의 죽음이 내린다.
    세상은 조금 어두워지고 약간 더 무거워진다.
    하늘을 보니 달도 없고 별도 없고 어둠만이 둥실 떠있다.
    집 주변의 논, 밭, 길, 땅들도 몇 센티미터 쯤 가라앉은 것 같다.

    아무 것도 없는 도로를 미끄러져서 원주를 향해 질주하는 트럭.
    어머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받으며
    달리는 동안 계속 울먹이는 목소리로 할머니 얘기를 하신다.
    가로등이 전보다 조금씩 더 고개를 숙이고 있고 조금씩 더 어둡다.
    아버지는 전날의 피곤함도 잊은 채 열심히 새벽을 운전하신다.

    몇 달만에 돌아온 원주는 죽음의 도시였다.
    도시 전체에 무거운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차가 시내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더욱 무거워진 느낌이다.
    이내 새벽이 열리면서 긴 하루가 밝아오는데 병원에 도착하였다.

    누워계신 할머니가 그렇게 작으신 줄 몰랐었다.
    하얀 얼굴은 조금 작아졌고, 손은 아주 많이 작아졌다.
    어머니께서 울음을 터뜨리며 할머니 몸에 매달리신다.
    엄마 가슴이 아직 따뜻한데 왜, 엄마 좀 살아나봐, 엄마...

    어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실감나지 않는 할머니의 죽음보다 슬퍼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내게 더 슬프게 다가온다.
    어머니의 슬픔에서 나의 슬픔을 보게 된다.
    나도 따라서 울고야 만다.

    친척들, 지인들이 한 가족 한 가족 병원으로 온다.
    이모들이 울고 쓰러지고 해서 산사람도 걱정이다.
    남자들은 모두 담배를 피우는 벙어리가 된다.
    병원 직원들은 평소에는 결코 지을 수 없는 표정으로 옆에 서 있다.
    나는 전화를 해서 ㅡ역시 군생활 중이던ㅡ동생에게 슬픈 소식을 알렸다.

    어른들이 장례식 준비를 시작한다.
    몇 시간 뒤면 할머니가 낳으신 또 하나의 생명이 이리로 올 것이다.
    며칠 동안 죽음의 주위에 수많은 생명들이 모여들어 어둠을 흩어버릴 것이다.
    결코 밝아질 것 같지 않던 지난 밤의 주검을 녹이며 결국은 쨍쨍해진 오늘의 해처럼 말이다.

    언젠가 나도 하얗고 작게 눕겠지만
    그 때가 여름이었으면 좋겠다. 눈부시게 파랗고 쨍쨍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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