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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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될 만한 사람Essays 2008. 9. 1. 12:34
오늘처럼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이면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무슨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도 어느 샌가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부자가 될 사람과 그럴 가능성이 적은 사람의 차이란 무엇일까. 오전 늦게 일어나 세수를 하고 기분이 내켜서 면도를 하면서 갑자기 생각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펜대 밑에, 아니 모니터 위에 풀어보려 한다. 평소 내가 사용하는 면도기는 날이 3개이다. 학생 때부터 - 엇그제 대학을 졸업했다 - 지금까지 2년 가량 쭉 사용해오던 제품이다. 가격대를 고려하면 싸구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도 할 수 없는 3중날. 한 달 정도 전에 동생이 5중날의 면도기를 가져왔다. 같은 회사 제품인데 이 모델은 제품 라인업에 아주 상위에 있는 고급 면도기. 내게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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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우정이나 사랑 같은 진하디 진한 관계의 실체Essays 2008. 6. 11. 20:30
최근 미니홈피에 부담 일촌평 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누군가 신경 써준다는 것은 달던 쓰던 좋은 거다. 처음에는 쓰던 것도 곱씹어 보면 달콤하기까지 하다. 이상과 낭만, 그리고 사실과 현실은... 모두 현실 속에 실제로 존재하고, 내 부분을 이룬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움으로 포장해도, 미련한 슬픔으로 치부해도 내가 영향을 받고 또 주는... 마치 물감 섞인 물통 안의 모든 색깔들과 같은 거다. 우정이나 사랑 같은 진하디 진한 관계의 실체는 각자의 물통이 결코 섞일 수 없음을 인정하고 꾸준히 서로를 지켜봐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통 주인만이 그 색깔을 바꿀 수 있다. 내 물통은 무슨 색깔일까...? p. s. 간혹 사람들은 자기 물통의 물을 모두 쏟아버리고 맑은 물을 새로 받고 싶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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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조금은 환상적인 느낌이 들 때면Essays 2008. 4. 2. 21:30
언젠가 조금은 환상적인 느낌이 들 때면 눈을 감고 고개를 약간 들고 숨을 깊게 한 번 들이쉬면 수면이 보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수면이 어디선가 불어오는 빛과 함께 찰랑거린다. 그 일렁임은 아주 부드럽고 어딘가 호흡과 닮아있다. 숨을 쉬어도 물방울 같은 건 전혀 생기지 않는다. 물 속인지 맥주 속인지 알 길도 없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정말 편안한 느낌이란 것,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할만큼. 그건, 음-, 엄마 뱃속 양수 안에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은 아니다. 약간은 시원한 밤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고민 없이 생각 없이 잠이 아주 잘 올 듯한 기분과 함께 푹신하고 넓은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쓴 채로 팔과 다리를 편하게 쭉펴고 눈을 감으면 그제야 전신을 타고 천천히 부드럽게 흐를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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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멋진 생각Essays 2008. 4. 2. 20:55
아침마다 삶은 눈처럼 내린다. 그것은 꼭 아침이라야 한다. 초겨울이어야 함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낙엽과 첫눈이 만날 때 즈음 앙상 말라 더 높아 보이는 나무 꼭대기의 까치 둥지처럼 그것은 꼭 그럴 때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내 입처럼 모락모락 끝없이 김을 내뿜는 하수도에 대한 동질감이나 까치 우는 소리와 히터의 스팀 소리의 상관관계 같은 이질감, 그리고 전후자 틈틈에 끼어 있는 존재들에 대한 크고 작은 이미지를 말이다. 때묻은 자신도 남도 눈처럼 투명하게 보이는 시간, 영화 같은 깨끗한 사랑을 소복소복 쌓아갈 수 있을 듯한 느낌, 군데군데 파릇파릇한 잔디가 남 같지 않다. 2003. 12.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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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다Essays 2008. 3. 4. 23:02
밤이 되었다. 건물들의 검은 실루엣에 선선함이 스쳐 지나간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밤이다. 담장 너머로 간간히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낡은 창문을 억지로 열 때의 소리 같다. 보름달도 아닌데 산 가까이 뜬 달이 유난히 크고 밝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저 넘어 코발트빛 하늘로부터 바람에 쓸려온 추위가 코 끝에 부딪혀 물방울처럼 튀기는 순간, 나는 뚜렷이 현재를 보았다. 그것은 아주 진했지만 맑았고 움직이지 않았지만 일정하지 않았다. 금방 짜놓고 아직 물을 섞지 않은 수채물감 같았다. 그걸 찍어 그림을 그려볼까 생각의 붓을 들었다. 밤을 헤집는다. 2004. 9. 23 - 군생활 어느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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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45분의 커피Essays 2008. 3. 3. 09:28
아침에는 양치를 해서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나는 줄곧 10시 45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44분까지 씁쓸했던 치약맛의 입 안 감촉이 45분이 되자 깨끗이 사라졌다. 언제 초승달이었냐는 듯, 어느 밤에 보면 보름달로 떠 있는 달처럼. 오전 10시 45분이 되자 불현듯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꼭 이 시간에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느낌, 그것은 운명이 타준 커피향이었다. 그리고 난 그 향의 빨아들이는 듯한 매력을 절대적인 느낌으로 거부할 수 없었다. 친절하고 얌전한 짝꿍에게 커피를 마실 건지 물어보고 이내 바로 커피를 타기 위해 일어섰다. 46분의 커피가 되서는 안 된다! 고, 아찔한 커피향이 날 몰고 있었다. 난 공기층 사이에는 없는 4차원적인 향기의 선율을 따라 프레스토하게 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