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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09. 23Poetiary 2009. 4. 2. 23:42
밤이 되었다. 건물들의 검은 실루엣에 선선함이 스쳐 지나간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밤이다. 담장 너머로 간간히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낡은 창문을 억지로 열 때의 소리 같다. 보름달도 아닌데 산 가까이 뜬 달이 유난히 크고 밝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저 넘어 코발트빛 하늘로부터 바람에 쓸려온 추위가 코 끝에 부딪혀 물방울처럼 튀기는 순간, 나는 뚜렷이 현재를 보았다. 그것은 아주 진했지만 맑았고 움직이지 않았지만 일정하지 않았다. 금방 짜놓고 아직 물을 섞지 않은 수채물감 같았다. 그걸 찍어 그림을 그려볼까 생각의 붓을 들었다. 밤을 헤집는다. p.s. 군복무 당시 새벽에 불침번 서던 중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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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09. 19Poetiary 2009. 4. 2. 23:40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 피천득 님의 '인연' 중에서 인연은 짧다. 또 잦다.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난 그 동안 길게 만날 사람에게 관심을 더 쏟고 짧게 만날 사람에게는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 한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과의 짧은 인연처럼 너무 잦은 나머지 소중함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물과 공기 같은 인연들, 그리워하는데도 현재의 순간들에 떠밀려 지나가고 지나왔다. 여유 없이. 의미 없이. 머리 위에 작대기(계급장) 하나 더 긋는 것을 더 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게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때론 몸이 지쳐 피곤하고 힘들어 신경 쓰지 못 했다고 변명했었지만, 앞으론 다르련다. 정신력으로, 숨어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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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09. 10Poetiary 2009. 4. 2. 23:34
부모님과 누나가 면회를 다녀가셨다. 면회는 휴가와 외박ㅡ 아직 외박은 나가본 적 없지만ㅡ과는 다르게 독특한 느낌이 있다. 휴가는 한 번 나가면 자신이 며칠 후에 복귀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고, 잊게 된다. 군생활이 끝난 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복귀 후에 적응시간도 길다. 하지만 면회는 당일 나갔다가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얘기가 다르다. 면회가 있는 날을 평소처럼 군생활의 연장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면서도 밖에 나가서 밥을 먹는 등 '사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상봉과 군생활의 연장선 사이의 뜻밖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면회를 다녀오면 항상 그 날 저녁부터 자기 전까지 가슴이 쿵쿵 뛰고 기분이 들뜬다. 왠지 더 즐겁고 자신있게 남은 군생활을 보낼 수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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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09. 04Poetiary 2009. 4. 2. 23:33
담배가 늘고 있다. 해야 하는 일도 늘고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늘고 있다. 드라마 Magic에서 담배는, 자살은 하고 싶은데 자살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피우는 거란다. 오락을 하든 연애를 하든 재미, 환희를 쫓는 건 기분이 좋아지고 심장이 두근 거리고 흔히 '행복해진다'고 하는 상태가 되고 싶어서일까? 최후 비밀ㅡ베르베르의 소설 '뇌' 참조ㅡ에 가까워지고 싶어서? 훗. 평생 계속 뭔가를 결정하고, 또 그걸 꾸역꾸역 해야만하는 건지. 지금 내가 있는 곳, 시간은 선택이 아닌 운명인 것인지. 왜 오늘밤은 잠이 안 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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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08. 18Poetiary 2009. 4. 2. 23:29
"일이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지 않기 때문에 일이 어려워지는 겁니다." "원한다는 건,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 둘 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The Last Secret (뇌)' 중에서 2004. 08. 18 (하나 더) 나이가 많아지는 거에 비례해서, 아니, 나이가 많아진다는 건, 자기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 난 자신에 대한 생각이 남들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철이 일찍 들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그건 오해였던 것 같다. (그저 조용한 녀석이었을 뿐) 그만큼 이기적이고 여지껏 내 생각 밖에 못한다. 아직도 하나도 철ㅡ어른 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그것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