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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1. 10.Poetiary 2009. 4. 2. 23:26
경춘선을 끼고 달려내려온 안산을 향하는 시외버스. 11시 20분 차를 타고 그곳에 내가 있었다. 막바지 단풍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주는 수많은 산과 나무들이 이제 오후가 되면 비가 내릴 거라고 말하는 듯한 잿빛 하늘과 함께 '현실은 화려하고, 나는 우울하다'라는, 어느 죽은 시인이 말했을 법한 말들을 한없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하고 있었다. 가끔 우울증 비슷한 상태로 되긴 하지만 평소 아주 낙관적인 사람이기에, 잿빛 하늘 뒤의 눈부신 해가 잠시 후 비로 씻긴 세상을 찬란히 비출 것이라고 믿으며 평소에 밝게 생각하던 사고의 습관이 그렇게 허무한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아까까지 학교(강대) 정문에 서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과거 대학 신입생 때의 멋도 모르던 자신과 미래에 복학한 후의 역시 멋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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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13.Poetiary 2009. 4. 2. 23:21
가끔씩 사람은 살아있는 것만으로 인생에 만족해야 할 때가 있다. 그 만족감의 차이란 실로 엄청날 수가 있다. 아주아주 불행한 사람과 아주아주 행복한 사람의 차이란 그 만족감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테이블 위의 사과를, 빛을 받는 부분을 보는지 어두운 부분을 보는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어차피 밝고 어두운 양쪽을 모두 가졌으니. - 2003. 11. 16 다시 읽어보니 뭔 소린 지 잘 모르겠다. 소재가 생각났을 때 바로 쓰지 않아서 이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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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21 무제Essays 2009. 2. 21. 22:53
답답한 마음에 공원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밤은 여전히 투명했다. 토요일,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었다. 눈을 뜨고 나서 청소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밀린 드라마를 보고, 컴퓨터에 담아 놨던 영화를 보고, 책을 하나 펼쳐 들었다가 답답한 마음에 공원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이사 온 후 내게 많은 여유와 기회를 주는 고마운 장소다. 농구를 하는 사람들, 운동 삼아 트랙 위를 걷는 사람들. 그리고 한 대 더. 토요일 하루 종일 집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지 내가 담배를 피우며 서 있던 그 벤치 근처에는 십 수 개의 담배 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나무와 종종 대화를 하는 나인데 옆에 있는 나무에게, 이 공원에게 미안했다. 창피했다. 주변에 떨어진 꽁초들을 모두 주워 가까이 있던 쓰레기통에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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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와 개발자 사이, 개발자와 개발자 사이Essays 2008. 9. 29. 12:40
난 개발자(developer)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프로그래머(programmer)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programmer는 뭔가를 pragram하는 사람이다. 성능, 사용자/유지보수 편의성 등등 용어를 다 합해서 프로그램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계획하고 쓰레드들의 일정을 조정하고 스케줄을 짜는 사람. 여기에서 cost가 비집고 들어올 여지는 따로 신경 쓸 만큼 크지 않다. 미리 program 해놓은 것을 '갑'의 입김이 어찌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control은 프로그래머에게 있다. 이런 사견이 비경제적, 비현실적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비경제와 비현실에서의 '경제'와 '현실'은 주식회사의 주주들의 것이고, 계약의 우위에 있는 '갑'의 경제와 현실이지 실제로 프로그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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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Essays 2008. 9. 1. 15:29
를 두번째로 읽기를 마쳤던 그 날 오후 밖에선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두어 시간 전부터 켜놓은 블룸버그 인터넷 라디오가 빗소리와 함께 방 안에 흘렀다. 브라우저에 띄워놓은 다니엘 파우터의 Free loop의 가사가 멜로디를 연상시켜 주었다. 5년 쯤 전 군대 가기 전 첫 번째로 읽은 는 전혀 와닿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당시 난 작가가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거의 이해하지 못 했다. 문장 사이사이의 옥구슬 같은 표현들과 원본에서는 그 표현들이 어떤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 되었을 지도,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가 단순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 라는 문장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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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될 만한 사람Essays 2008. 9. 1. 12:34
오늘처럼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이면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무슨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도 어느 샌가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부자가 될 사람과 그럴 가능성이 적은 사람의 차이란 무엇일까. 오전 늦게 일어나 세수를 하고 기분이 내켜서 면도를 하면서 갑자기 생각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펜대 밑에, 아니 모니터 위에 풀어보려 한다. 평소 내가 사용하는 면도기는 날이 3개이다. 학생 때부터 - 엇그제 대학을 졸업했다 - 지금까지 2년 가량 쭉 사용해오던 제품이다. 가격대를 고려하면 싸구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도 할 수 없는 3중날. 한 달 정도 전에 동생이 5중날의 면도기를 가져왔다. 같은 회사 제품인데 이 모델은 제품 라인업에 아주 상위에 있는 고급 면도기. 내게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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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는 지저분한 칠판 한 구석에 도덕적인 숫자와 해석을 적는다, 김광수경제연구소People 2008. 7. 30. 03:03
언제부터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돌아보면, 가장 친한 친구가 경제학을 전공해서인지, -공대생인 내게 경제나 경영이라면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작년 KBS인가 MBC인가에서 해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관련 스페셜 다큐 형식의 TV 프로그램을 아주 흥미롭게 본 이후인지 당췌 기억나질 않는다. 어쩌면 컴퓨터라는 것을 최초로 고안한 사람들이 수학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우리 삶의, 그리고 세상의 관심이 온통 서로 다른 의미의 숫자들이란 것을 깨닫게 된 후인지도 모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 중 숫자를 모든 것으로 상징하는 재밌지만 씁쓸한 글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숫자는 위대하거나 초라한 상징이고, 또 일상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큰 부분이다. 요즘 막가는 우리나라의 세태에도 여기 정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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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우정이나 사랑 같은 진하디 진한 관계의 실체Essays 2008. 6. 11. 20:30
최근 미니홈피에 부담 일촌평 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누군가 신경 써준다는 것은 달던 쓰던 좋은 거다. 처음에는 쓰던 것도 곱씹어 보면 달콤하기까지 하다. 이상과 낭만, 그리고 사실과 현실은... 모두 현실 속에 실제로 존재하고, 내 부분을 이룬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움으로 포장해도, 미련한 슬픔으로 치부해도 내가 영향을 받고 또 주는... 마치 물감 섞인 물통 안의 모든 색깔들과 같은 거다. 우정이나 사랑 같은 진하디 진한 관계의 실체는 각자의 물통이 결코 섞일 수 없음을 인정하고 꾸준히 서로를 지켜봐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통 주인만이 그 색깔을 바꿀 수 있다. 내 물통은 무슨 색깔일까...? p. s. 간혹 사람들은 자기 물통의 물을 모두 쏟아버리고 맑은 물을 새로 받고 싶어하지만,..